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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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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직업은 신문배달원

나는 초등학교에 시작해서 고등학교2학년까지 신문배달을 했다. 그때가 정확하게 1984년 4월 11일로 기억하는데 벌써 39년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은 거의 조간신문이지만 그당시에 나는 석간신문 중앙일보를 배달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2시간정도 걸어다니면서 중리동,법동,읍내동 일부를 배달하고 마지막에는 신문 1부를 버스기사에게 주면 공짜로 태워주었었다.
1.
내가 신문을 배달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벌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 그 당시에는 학교다니면서 화첩과 물감, 크레용도 살 돈이 없었다. 미술시간에 준비없이 학교에 가기보다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내가 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술시간에 아무 준비물 없이 한시간동안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느껴졌었다.)
2.
그당시 첫월급을 기억하는데 14,400원이었다. 내가 태어나 가장 큰 돈을 스스로 벌어본 돈이다. 1000원씩 2명의 여동생에게 나누어 주고 물감도 사고 필요한 것을 샀던 것을 기억한다. 엄청 큰 돈이었다.
3.
처음엔 1년간만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신문을 배달했다. 호기심으로 신문을 돌리는 친구들도 여러명 있었는데 그들중 대부분은 2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나는 버틴게 아니었다. 그냥 상황이 할 수 밖에 없었다.
4.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를 만든 가장 소중한 시간은 그 때였다.
1) 남들이 놀러 가고... 쉴 때... 나는 신문을 돌려야 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거야' 라는 마음으로 다르게 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2) 그때 정말 힘들었다. 눈이와서 힘들고, 비가와서 힘들었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버텼었다. 그게 자양분이 되었는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게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3) 그당시 나는 동료들보다 월급이 훨씬 많았다. 왜냐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신문을 많이 배달해서 월급을 높이려고 했는데, 나는 영업을 해서 월급을 높였기 때문이다.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것이고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그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영업을 배운 것이다.
4) 그당시 신문만 돌린게 아니었다. 매일매일 신문을 읽었고, 그때의 신문은 한문과 한자가 병용되었는데,,, 그때 배운 한문이 지금도 이어졌고 그때 읽던 습관이 지금도 신문읽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5) 그 때 만났었던 함께 배달했었던 많은 동료들을 기억한다. 그들중 형편이 좋았던 친구는 없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살면서 부자되고 싶은 소망도 있지만... 난 그것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항상 남아있다... 그일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다짐해본다.
얼마전 고등학교 2학년~3학년까지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아마도 내가 신문을 배달했던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 보았던 친구는 승빈이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2학년때에 신문배달하고 받은 월급으로 이 친구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었었다고 한다.
벌써 오래 된 이야기가 되었다. 삶이 나에게 준 사명을 잘 기억하고 오늘도 소중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