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묘한 감각이 생긴다.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숫자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외부에서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즈음이면 ‘이제는 방향을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문제는 대부분 기술이나 전략의 영역이라고 믿게 된다. 무엇을 더 도입할지, 무엇을 더 개선할지, 어떤 선택이 더 효율적인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조직을 흔든 결정적인 순간들은 대체로 전략이 아니라 ‘겸손을 잃은 태도’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사업가에게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성장기에 반드시 필요한 생존 장치다.
위기는 항상 조용히 다가온다. 처음부터 큰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말 한마디가 조금 거칠어지고, 설명 하나를 생략하고, 불편한 질문을 굳이 정리하지 않은 채 넘긴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바쁘니까, 지금은 결과가 더 중요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숫자는 유지되고, 조직은 굴러가고, 외부에서는 오히려 잘 나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된다.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아주 작은 계기로 균열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우리는 흔히 그 마지막 사건을 문제의 원인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쌓인 선택들이 이미 방향을 결정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99도에서 1도가 채워졌을 때 물이 끓는 것처럼, 겸손은 그 99도를 읽어내는 감각이다.
이쯤에서 사장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조직의 분위기, 이 조직의 말투, 이 조직의 판단 기준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직원들이 점점 계산적으로 변하고, 파트너들이 책임을 피해 다닌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구조는 대부분 사장의 말과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사장은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은 사장이 말한 것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까지 기준으로 삼는다. 넘어간 일, 침묵한 순간, 애매하게 웃고 지나간 장면들이 그대로 학습된다. 그래서 겸손은 ‘좋은 말’이 아니라, 사장이 조직에 남기는 기준의 방식이다.
조직 안에서 자주 반복되는 태도가 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무엇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 태도는 겉으로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괜히 나서서 책임질 필요 없고, 굳이 내 몫이 아닌 일을 떠안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런 판단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장이 그런 태도를 용인하거나, 때로는 그런 선택을 더 효율적인 판단으로 평가하는 순간,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모두가 손해를 피하려 하지만, 그 결과 조직 안에서 신뢰는 사라지고, 기회는 줄어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장기적으로 더 적은 것을 갖게 만든다. 겸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장이 먼저 갖추어야 할 태도다.
사장 스스로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머리가 좋고, 판단이 빠르고, 여러 번의 성공 경험을 가진 사장일수록 더 그렇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똑똑한 직원’이 많아질 때가 아니라, 사장이 스스로를 가장 똑똑하다고 믿기 시작할 때다. 그 순간부터 조직 안에서 불편한 말은 점점 사라진다. 경고는 과장으로 치부되고, 다른 시선은 비관적으로 해석된다. 숫자가 잘 나오고 있을수록 그 착각은 더 오래 유지된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세상은 개인 몇 명의 실수로 보지 않는다. 사장의 기준과 태도가 조직 전체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만약 겸손한 태도로 주위사람들의 말을 수용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업가에게 겸손은 권력의 착각을 끊는 장치다.
돈을 잘 버는 사장은 많다. 전략을 잘 짜는 사장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신뢰받는 사장은 드물다. 그 차이는 결국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사장이 어떤 말을 허용했는지, 어떤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는지, 어떤 기준 앞에서 침묵했는지가 조직의 얼굴이 된다. 조직은 사장의 생각보다 훨씬 정직하게 그 태도를 닮아간다. 그리고 그 태도의 바닥에는 결국 겸손이 있느냐 없느냐가 남는다.
성장은 전략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사장의 태도로만 남는다. 조직이 커질수록 사장은 더 많은 해답을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 더 많은 선택 앞에서 겸손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넘긴 선택 하나가, 몇 년 뒤 조직의 이름 앞에 붙는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겸손은 결국 미래의 신뢰를 오늘의 생각과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