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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과 토사구팽

초한쟁패의 승리자는 유방이었다. 유방은 본래 시골 시정잡배 출신으로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배경 속에서 자랐다. 다만 장점이라고 할 것은 넉살 좋은 성격과 빠른 눈치였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보는 눈이 유방을 황제의 자리까지 올렸다. 유방은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사람의 마음을 읽고 무슨 말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직관적으로 알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잘다루었기에 능력을 차용하여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사람을 잘다루고 사용하는 사람은 역사 속에 있으나 유방만큼 성공한 인물은 없었다. 그 핵심 비결은 게임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이론에서는 두명의 플레이어가 '협력'과 '배신'이라는 두가지 전략을 가지고 더 많은 포인트를 쌓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양측이 모두 협력 시에는 3포인트를 얻고, 상대는 협력하였으나 나는 배신한 경우에는 2포인트를 얻는다. 반대로 나만 협력할 경우에는 포인트를 얻지 못한다. 양자가 모두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3포인트를 얻는 것이므로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상대가 배신했을 경우를 고려한다면 항상 협력하기가 망설여진다. 이렇게 게임이론은 현실세계에서 양자가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이득이되는데도 협력하지 않는 비합리적 결정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다자간 게임이론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무엇일지 연구를 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는 '팃포택'전략이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전략으로 최초에는 무조건 협력하고 그 이후부터는 상대가 이전 거래에서 보여주었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는 전략이다. '팃포택' 전략은 모든 전략(항상 협력, 항상 배신, 무작위 협력 또는 배신 등등...)을 이기고 최강의 전략으로 등극하였으나 현실세계에 적용 시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첫째, 거래횟수 제한이다. 시뮬레이션에서는 거래횟수를 무한에 가깝게 설정했다. 그러나 팃포택 전략은 최초에 무조건 협력을 선택하여 한번의 거래는 뒤진 상태로 시작하고 보복(보상)을 핵심가치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거래의 횟수가 제한된다면 팃포택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둘째, 거래대상이 2명으로 제한되는 경우다. 팃포택전략은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상자들이 많을 수록 효과를 발휘하는데 소위 '평판'이 좋아지면 거래가 몰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거래할 대상자가 '항상 배신'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밖에 없다면 팃포택도 배신만을 선택하여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초한지를 보면 유방이 천하를 두고 경쟁하게 되고, 경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들이 나온다. 그때마다 유방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직관으로 기회를 잡았다. 첫번째는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성으로 진군할 때이다. 초나라 의제는 진나라를 공격하여 함양성을 가장 먼저 점령하는 장군에게 가장 큰 공을 인정하고 함양성을 하사하기로 했다. 함양성으로 향하는 경로는 2개였으며 각각 항우와 유방이 자신의 군을 이끌고 진군한다. 항우는 진나라에 깊은 원한을 가진 초나라 사람으로서 모든 진나라 군을 격파하며 진군한다. 반면 유방은 저항하지 않는 진나라 성주들의 항복을 받아주는 관용을 베풀면서 진군을 하여 더 빠른 속도로 함양성에 들어간다.(협력). 그리고 함양성에 이르는 결정적 길목에 항우의 진군을 방해하는 병력까지 남겨서 승리를 더 확실히 했다.(배신). 나중에 함양성에 도착한 항우군의 전투력을 두려워하여 홍문의 연에서 함양성을 양보했다.(협력). 사실은 교묘한 프레이밍으로 당장에 목숨을 건지고 추후 항우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두번째는 항우와의 전쟁을 하던 중 휘하 장수와 동맹을 활용할 때이다. 휘하 장수에는 한신이 있었고 항우를 함께 적으로 두었던 동맹은 영포와 팽월이 있었다. 유방은 한신이 북방에 연나라를 공격하기 전 항우와의 전투를 위해 한신의 정예병을 훔쳤다.(배신). 그리곤 한신이 북방과 제나라를 평정했을 때는 왕으로 책봉했다.(협력). 또한 유방은 항우의 후방을 공격할 수 있는 영포와 팽월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했다.(협력). 그리고 항우가 우희와 오추를 노래하며 죽고 난 뒤에는 앞서 언급한 장수들을 모두 죽였다.(배신).유방이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던 비결은 모든 전략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철저히 이용하되 당사자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상황에 맞춰 설득했다. 제 아무리 현대의 팃포택 전략이라고 할지라도 그 약점인 거래 횟수를 제한해버리는 방법(죽음)을 사용했으니 유방을 이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유방의 특기인 기발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기존의 틀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즉 위대한 승리자가 되려면 타인을 압도하는 새로움과 변화로 대응할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다익선을 말하며 우쭐대다 삶아지고 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