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이 의미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변방의 활이다. 내가 처한 태생이 그랬고, 나의 전공이 그랬으며 나의 국가가 그렇다.
나는 민족주의자였다. 어쩌면 그러한 관성이 반성하는 나와 계속하여 대립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쓸쓸하고 차분해진 마음에 좋아하는 작은 커피숍에 들러 글을 쓴다.
예정된 강의 계획서를 입력해야하고, 학술논문과 작품논문의 골조를 잡아 보려한다.
급한게 있다면 후자일 테다.
작품 개요
기후변화로부터 시작된 작품의 영감. 뒤틀린 감정의 간극이 잡아낸 풍경.
2021년 여름, 완주군 동상면 연석산의 작은 연못앞에서 온몸의 피가 덥혀지다 못해 끓는듯 했다.
슬리퍼에 반바지 밀짚모자를 쓰고 낡은 낚시의자에 앉은 육중한 남자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퐁당, 풍덩. 쑥, 뽀지락. 귀기울이면 연못의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다채로운 음색을 드러낸다.
(이 황홀한 음색과 초록의 향기는 그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있음을 알게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여름산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남자의 밀짚모자와 어깨 위로 대지 위로 토독 토독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리던 수묵화를 멈추지않고 계속하여 그린다. 빗방울과 함께 완성된 수묵화. 이윽고 비가 그친다.
그는 볕과 비와 함께 채집한 풍경을 분리하여 나열한다. 그는 언제부터 연못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가.
남자가 연못을 그리기시작한 것은 한 순간 풍경이 그가 날세워 생각하던 주제의식과 맞닿는 순간이 있어서다.
그가 나고자란 땅은 백제의 고토로 드넓은 들판과 산이 어우러진 자연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자연스레 남들이 관심두지 않는 빈 들과 역사에 관심이 갔다.
그는 느리지만 할일을 해 나아가는 농부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러던 그가 경험한 우월한 세계와 그렇지 못한세계에 대한 물음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했다.
19살 언저리에 보았던 도쿄의 풍경은 그가 나고자란 들판과 다른 세계였다.
변방과 제국의 수도를 경험한 남자는 어떤 세계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경계에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폭우로 넘쳐흐르는 연못은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향한 남자의 입장은 비로소 분명해졌다.
기후변화에 의한 우기가 남자에게는 작품의 영감이 되어준 것이다. 작품 범람정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벽 안쪽의 공간을 정원이라 한다면, 벽 밖의 공간은 야생의 공간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상정할수 있다.
안쪽에서 넘쳐나는 동시에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혼돈의 세계는 창조의 세계다.
이 세계에 새로운 가치가 태동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