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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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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0월17일 새벽 두시경

10월10일 서울 발산역 숨이편한병원에서 수면무호흡수술 편도 제거술을 받고 이틀간 입원했다가 금요일 오전 경희대학병원에서 어깨제거술을 위한 수술적합검사를 받고 오후에는 성신여자대학에서 야외 강의를 했다. 실내에서만 작업을 하던 학생들에게 처음 접하는 야생의 대화를 미룰 수 없었다. 밤 10시 경 예술경영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의 인터뷰 요청에 의해, 창작스튜디오 혹은 레지던시라 불리는 이주형 작업공간을 경험한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수술직후 진통제 효과가 떨어진것인지 후배들과 헤어지고 논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혼미함과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막히는 시간이 아니어서 흑석동에서 두시간이면 논산에 입성할 시간임에도 나는 거의 모든 휴게소에 들르며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했다. 결국 동이 트고 6시가 넘어서야 휴게소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의 요양은 요지부동이었다. 병원에선 먹을만하던 미음이나 죽조차 아예 넘기기 거북하고 아팠다. 나는 앉은채 오직 액체형태의 베지밀을 마시며 이따금 주린배를 감추었고 유투브체널로 수면 무호흡 편도수술에 대해 정보를 모았다. 14일정도의 회복기간을 지나면 안아프다는 주장. 그 두배인 4주의 회복기간이 지나야 일반식을 할 수 있다는 주장. 사람마다 다르다는 정보를 얻었다.
10월16일. 그날도 견딜 만 했다. 나는 가루형 진통제와 액상형 위장약을 섞어 목에 퍼부었고. 그때마다 두세시간동안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이전과 다르게 꽤 고통이 줄어든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폭풍 전야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글과 식염수 세척을 귀찮아하며 앉은채 잠들었다. 거실은 몇일동안 수건 한 장 널지않아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상태. 결국 일이 터졌다. 17일 새벽 두시경. 나는 목에 느껴지는 큰 이물감에 이를 뱉어냈다. 선지덩어리같은 이 나왔다. 그런데 뜨뜻한 무언가가 계속 목뒤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피였다. 아무리 뱉어내도 피가 멈추질 않았다. 편도제거술의 경우 6~7일차에 이러한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얼음물 가글을 했으나 피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119를 불렀다. 충남대는 두차례 이상 전화를 안받다 와도 된다는 소식. 원광대는 자리가 없다는 소식. 건양대응급실도 두번 만에 연락이 닿았다. 자리가 있으나 선생님을 기다려야 할 수 있다는 말. 가장 가까운 건양대 응급실로 가주길 소방대원에게 부탁했다. 차안에서 작업실에서 뱉은 만큼의 피를 뱉어냈다. 뱉지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고 계속 뱉다가는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가 올 수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피를 뿜었다. 내 또래의 여의사 한명과 그의 제자 처럼 보이는 앳된 남자의사 둘이 붙었다. 의사 셋이 붙어서 출혈부위를 전기로 지지는 용접을 시도했으나 그 과정이 참 급박했다. 내게 재수술을 재안 했다. 금속관으로 입을 벌리고 전신마취를 한뒤 출혈부위를 용접하는 것이다. 치아가 손상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다급히 수술사인을 하고 피검사와 혈압 심전도 등 수술 전단계의 검사를 일이주일동안 세번이나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다행이 수술방이 가득차서 대기기간이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얼음물로 가글을 했다. 얼음물은 혈관을 축소시킨다. 애초에 작업실에서 얼음물가글을 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고 겨우 약만 삼키는 수준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도제거술 사후 과정에서 기도가 막혀 죽는 경우가 일년에 한차례정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또 전신마취에 삽관을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묵직한 핏덩이가 목의 80프로를 잠식하고 나서야 피가 멈췄다. 나는 코로만 숨을 쉬었고 입원후 예후를 보자는 동의를 얻어냈다. 응급차로 실려온 지 만 하루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물조차 마실 수 없다. 언제고 출혈이 다시 시작되면 생명을 위해 수술을 해야한다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밤을 새서라도 내일이 오더라도 재수술을 막을거다. (내일도 금식 하라고 한다.) 아침에는 부디 이 뭉퉁한 핏덩이 밑에 새살이 돋아 출혈이 멈춰있기를.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서울의 수술전문병원을 통해 수술을 한뒤 반드시 지역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함을 알았다. 절대 혼미한상태에서 자신을 캐어하기란 어려운일이다. 잠을 잘 수 없는 병원의 불편함을 벗삼아. 건양대학교 메티컬캠퍼스를 보며 밀린 글과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긴긴 밤 단숨에 논문을 써보려 한다.
다음달 16일 17일 까지는 모든게 회복되어있을 것이다.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늘 형에게 고맙다. 형이 없었다면 시골환쟁이에 머물렀겠지.
친구이자 동료자 선배로 언제나 자극을 주고 도움을 주는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언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