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home
청년들의 시작
home

12월 23일

엘린 평소 저는 말로 표현할 때나 아니면 반응하는 행동들이 좀 더 큰 편이에요. 그런 모습 때문에 조금 너무 가식적이다 가식증이 같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같은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니까 이거 진짜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한동안은 그래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흥이 좀 내려가서 쓸 때가 있어서 한 번 제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회적인 방법으로 시도를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표현을 줄이고 다른 걸 속이고 하루 종일 의식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까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오히려 처음에는 제가 그렇게 세게 반응하지 않았는데 왜 지금 나한테 이렇게 반응하냐 이게 오히려 되게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고 그 모습을 유지하려고 해도 힘들더라고요. 도대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한 분이 저한테 그런 말을 했었어요. "한 번 오해하다 보니까 너는 회사의 지침이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나는 회사를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예요. 저는 평소에 저를 가식쟁이라고 부르던 분이 1년 넘게 놀리시던 분이었는데 그런 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느낌이 새로웠어요. 정말 기쁘다기보다는 처음으로 저를 안 좋게 바라봤던 사람이 저를 이해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이후로는 굳이 제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고 표현을 줄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이후로는 행동이나 말, 이런 표현들을 조일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제 마음이 좀 안정됐고 이전만큼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를 평소에 아프게 했던 분에게 이해를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고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
수잔나 위로받았던 경험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은 있는데 사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을 했었어요. 일단은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제가 중학교 2학년 시기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안 좋은 일들이 여러 겹겹이 터지면서 좀 힘든 시절이 있었어요. 사춘기 그런 건 아니었고요. 근데 그때 옆에 있었던 친구가 생각이 나요.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오르거든요. 사실 그 시기에 제 사정을 만약에 아는 친구가 위로를 해줬다고 하면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너가 뭘 알아?’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 특별한 말을 그 친구는 해주지도 않았고 그냥 계속 옆에 있어줬었어요. 그냥 “너는 괜찮아,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야”라고 항상 믿어주고 말해줬던 친구였는데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해 보면 위로라는 게 꼭 말을 할 필요 없이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하이 위로받은 경험을 생각해내기가 진짜 오늘 좀 힘들었는데, 저는 평소에 좀 단순한 편이어서 인터넷에 있는 스트레스 검사 같은 거 있잖아요.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회색으로 보이고 안 받은 사람은 빨간색, 파란색으로 보이고 이런 거요. 저는 그런 걸 하면 항상 회색으로 나와요. 스트레스 없다 쪽으로 나오는 거예요. 저는 힘든 일이 있어도 그날 잠깐 화내고 짜증 좀 집에서 혼자 내고 그러고 그냥 잊어버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남에게 크게 위로를 받고 이런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그나마 하나를 뽑자면 예전 여자친구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었는데 일이 힘들고 집에 들어가면 강아지가 되게 꼬리 치면서 반겨주잖아요. 그게 되게 좋더라고요. 힘든 날이 조금은 비춰지는 느낌, 그 정도였습니다.
레니 위로가 된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저는 사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관계에서 주는 에너지나 긍정적인 거나, 서로 대화하고 풀 수 있는 것들 이런 걸 되게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 되게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을 비우고 싶어서 등산을 갔고, 등산을 하면서 플로깅을 해봤어요. 쓰레기를 주우면서 등산을 하는 거였는데, 올라가는 동안 어르신들이 엄청 혼내시더라고요. 위험하게 왜 그런 짓을 하냐고요. 그런데 내려오다가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이런 거 해서 너무 좋다’고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그 말로 대화를 하게 됐고, 그분 사진도 찍어드리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떡을 주시더라고요. 그 떡을 얻어먹으면서 내려오는데 그분 아드님 얘기도 듣고,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런 게 정의인가 싶었어요. 모르는 사람과도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현타가 사라지고 회복이 됐던 경험이었습니다.
키르아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났는데요. 하나는 엄마 얘기예요. 저는 항상 엄마한테 되게 좋지 않은 딸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문제를 일으키거나 탈선을 한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부모님들이 바라는 수순을 밟지 않고 많이 게으른 편이기도 해서 엄마가 속상해하실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외모가 아빠도 엄마도 많이 안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데, 엄마가 장난으로 ‘어릴 때 인큐베이터에서 바뀐 것 같다, 성격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진지하게 엄마가 먼저 얘기했는지 제가 먼저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만약에 진짜 바뀐 거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어요. 엄마도 저한테 ‘진짜 딸이 찾아오면 어떡할 거냐’고 하셨는데, 제가 ‘재산을 비교해서 많은 쪽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엄마는 ‘그 딸이 아무리 부자라도 자기는 지금의 너랑 살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정말 감동이었어요. 엄마는 제가 한 말이 서운하다고 하셨고, 저도 말을 바꿔서 ‘진짜 부모님이 나타나도 나는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말하며 훈훈한 순간을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또 하나는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과 잘 안 되어 너무 슬펐던 날이었어요. 집 앞 공사판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와야지 했는데 가는 길에 공원에서 한 여자분이 완전 오열하고 계셨어요. 저도 울고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저분 되게 우신다’고 생각하고 공사판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분이 아직도 울고 계신 거예요. 저는 안 울고 있었고, 그래서 그분에게 다가가 ‘왜 울고 계시냐’고 물었어요. 많이 당황하셨는데, 옆에 앉아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분도 실연을 겪고 계셨고, 저보다 더 막장 같은 사연이었어요. 불륜, 마약 등 자극적인 이야기였는데 그분과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씩 사와서 같이 마시며 얘기했어요. 그 이후로 다시 만나진 않았지만, 그분도 많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고 저도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 언니가 저한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오늘 생각이 났습니다.
올라프 오늘 주제가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제가 저한테 위로가 되었던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주말에 별 보러 갔던 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주말에 엄청 일기예보가 구름이 낀다 비가 온다 이러면서 되게 안 좋았는데 제가 어떻게든 한번 보고 싶어가지고 열심히 찾아봤거든요. 구름도 안 끼고 맑은 장소를. 그래서 결국에 찾아간 데가 도시 쪽이라서 잘 안 보이는 곳이긴 한데 그래도 도시인데 조금 빛이 약한 도시여서 그래도 좀 잘 보여가지고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고 이제 주변에 같이 별 보러 가신 분들이 가져오신 망원경 같은 거를 좀 빌려서 봤거든요. 한번 보겠냐 해서. 되게 그거를 보고 되게 좀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차 위에 누워가지고 그냥 한 30분, 40분 동안 계속 그냥 가만히 지켜만 봤는데 하늘만. 그랬더니 뭔가 학업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나 아니면 업무하면서 조금 힘들었던 거나 그런 것들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그 별을 보는 그 순간은 아무런 생각조차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저한테 어떻게 보면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릴리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막상 위로를 받았던 경험은 많았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나서 최근 일로 떠올려 보다가 첫 번째는 이제 마린이 공교롭게 들어와 있어서 마린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최근에 제가 약간 그래도 뭔가 회사 내에서 더 잘 해야 되는 부분이 있거나 약간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조금 드러났던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이제 퇴근하면서 마린이 전화가 오셨었어요. 그런데 그게 단순히 감정 공감해주고 “그래도 잘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전화가 끝난 게 아니라 그 어른으로서 제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거든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저한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누구나 남에게 터치를 잘 안 하게 되잖아요.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인가 보다 약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굳이 관여를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그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시는 걸 보고 저는 그것도 굉장히 큰 위로가 됐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뭔가 계획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됐고 그냥 이런 조언을 해주지 않고 포괄적으로 “잘하고 있어”, “더 열심히 해” 이렇게만 넘어갔으면 더 혼란스러웠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얘기를 해주는 거를 현실적인 조언이 가미가 되면서 그게 조금 큰 위로가 됐었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제가 야근을 하거나 늦게 들어왔을 때 옷도 못 벗은 상태에서 거실에서 이렇게 옆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좀 힘들어서. 그런데 키우는 고양이가 와서 얼굴을 그루밍을 해주거든요. 그럴 때 좀 큰 위로를 느끼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뿌듯하게 잘 살았구나. 내일도 열심히 해봐야겠다.” 하면서 그렇게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이렇게 두 가지 있는 거를 공유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롯 저도 두 가지가 생각이 났는데 첫 번째는 친구한테 상담을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저는 제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약간 취향이나 성향이 다수보다는 소수에 있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저는 한 번도 되게 나쁘다 생각을 안 했고 그냥 “이런 성향을 가진 나야, 나도 살아봤는데” 어느 순간에 약간 나야아이가 참여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좀 주변에서 “너 너무 독특하니까 바뀌어야 돼, 너무 평범하지 않으니까 평범하게 살아야 돼”라는 거를 들으면서 좀 살짝 혼란이 왔었던 거죠. 그래서 “아 나는 그런데 이런 사람인데, 촉박하게 어떻게? 평범한 게 뭔데?”를 굉장히 궁금해하면서 살았었다가, 그걸 이제 친구한테 고민으로 얘기를 했었는데 처음으로 그냥 “있는 그대로 너가 그런 사람인데 왜 굳이 바뀌어야 돼?”라는 얘기를 해줬던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걸 들으면서 이렇게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친구가 해줬던 이야기가 “그게 남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너가 불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너를 받아들여”라고 얘기를 했을 때 좀 제 정체성을 다시 되찾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사실 제 인생에서 정말 처음이었던 경험이 있어서 이렇게 받아들여주는 친구가 있어서 되게 감사하다, 지금도 굉장히 고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게 생각이 났고, 두 번째는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독서를 통해서 얻었던 그 약간 에세이 같은 책을 통해서 얻은 위로도 있었고, 고민이나 좀 방향을 못 찾을 때 저는 책을 통해서 좀 많이 찾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내가 고민이 있을 때 “아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겠다.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라는 거를 최근에는 책을 통해서 많이 찾았던 것 같고, 그래서 이런 걸 통해서 저는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루나 회사 내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격려와 위로를 주시지만 저는 엘사가 조금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실 저는 성격이 제가 힘들다고 했을 때 저를 공감해주고 힘든 부분을 같이 들어주는 것보다 해결해 주는 게 저에게는 큰 위로와 공감이라서 사실 그런 것들이 남이 저에게 해주기는 그 누구든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다른 부분의 위로로 엘사가 저랑 같이 거의 2년째 보고 있는 어떠한 상황이든 어떠한 일이든 뭔가 저를 믿고 따라주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제가 뭔가 일이 힘들거나 좀 놓고 싶거나 이렇게 그런 위기의 끝에 있을 때 엘사를 바라보면 “저렇게 나를 믿고 따라주는 친구가 있는데, 여기서 내가 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겠다”라는 것을 요즘 계속 더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어떤 그게 엘사의 진심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제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봤을 때도 저를 되게 믿고 따라주고, 엘사가 했던 말 중에 “루나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는 그게 저한테 다른 의미의 위로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저를 따라주고 좋아해주는 저의 엘사한테 매일 회사에서 위로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났던 거는 남자친구인데 말씀드렸듯이 저는 얘기를 들어주는 거 이런 거에 위로를 안 받아서 사실 얘기도 잘 안 하고 그냥 아무 얘기를 안 하는데 더 안 하게 되는데, 그거를 알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뭔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런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묵묵하게 옆에 있어주고 뭔가 시간을 같이 보내주고 이렇게 저 그 힘들거나 이런 상황의 얘기를 뭔가 꺼내서 들으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게 항상 위로가 되는 것 같아서 그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아론 저는 위로가 되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누나랑 고양이 생각이 나는데요. 고양이가 독일에 있었을 때도 같이 있었거든요. 독일에 있었을 때 제가 19살 때 이제 딱 성인 될 때쯤에 좀 힘든 시기가 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이제 지금은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요. 뭔가 내가 이 나이 때 겪는 게 원래 이렇게 다 겪는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것들이 들이닥친 느낌이어서 심적으로도 그렇고 모든 걸 다 내려놨었어요 그때. 그런데 그때 제가 원래 아무한테도 얘기를 안 했거든요 그런 걸. 그걸 알고 저희 누나도 독일에 살았는데 6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 살았는데 뭔가 제 목소리만 듣고도 이제 와서 한 달 동안 저를 좀 케어를 해준 거예요. 애가 그 상태가 그때 완전히 이상해가지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 싶어서. 그때 한 달 동안 케어해주고 또 그때 고양이도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막 옆에 와서 자고 제 위에 올라와서 자고 막 그래가지고 그때 이제 아무 말이 없었거든요. 제가 문제에 대해서 얘기도 안 했고 그 문제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뭔가 그때 살짝 위로가 된다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때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에이전트 사기였거든요. 그때 제가 이제 그 일을 겪고 나서 너무 나빴잖아요. 어린애들 상대로 에이전트들이 사기를 친다는 게. 외국인들이. 저는 그걸 또 다른 사람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제 저한테 소식이 들려왔어요. 약간 한국에서 넘어온 애들이 있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제가 예전에 당했던 걸 똑같이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이제 그 애들한테 똑같은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얘기를 해줬는데 그걸 또 믿고 따라줬거든요. 그리고 나서 저한테 고맙다고 나중에 따로 인사를 하러 다 같이 왔었어요. 그런 거에서 살짝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오스틴 저도 이번 주제로 좀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는 2025년은 안 좋은 해였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삶은, 개인적인 삶은 안 좋은 일이 없어서 일어난 케이스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서 저는 올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집이. 그래서 그것 때문에 법원에도 왔다 갔다 하고 좀 심적으로도 많이 무너졌던 경우가 있었고. 또 두 번째는 최근에는 또 차가 갑자기 엔진이 고장 나가지고 수리비 폭탄을 맞았었어요. 최근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태어나서 현금을 그렇게 많이 뽑아본 경험이 처음이에요. 현금을 한 338만 원 정도 뽑아서 한 번에 지출했어요. 이런 식으로 2025년도 저한테 조금 힘들었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어떻게 보면 그 순간에는 조금 낙담하고 좀 지쳐 있었을 텐데 주변에 위로도 많이 해주시고 약간 다른 관점의 시선으로 피드백을 좀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차 엔진이 고장 난 걸 미리 안 게 어디냐”, “고속도로에서 그런 일 안 난 게 얼마나 다행이냐” 이런 식으로 다른 관점에서의 시각을 조금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조금 그런 힘듦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어제 좀 감사했고 또 주변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같이 함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또 그 외로 어제 또 이 주제가 딱 맞게, 마린이 제가 또 엊그제 주말에 몸살이 걸렸었는데 엊그제 눕기만 해도 목이랑 계속 어깨 통증이 와가지고 잠을 못 잤거든요. 새벽 7시까지 계속 깨어 있고 뒤척이고 이렇게 힘들었는데, 어제 병원도 다녀왔는데 어제 마린께서 또 개인적으로 밤에 호응을 해주신 거예요. “괜찮냐?” 그런데 그게 정말 어떻게 보면 마린의 관심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관심과 팀원에 대한 애정이 정말 리더로서 본받아야 될 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제 마린한테도 말했던 게 “마린처럼 좋은 리더가 돼야겠다”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답변을 드렸거든요. 이런 식으로 제 주변에 항상 좋은 동료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에 맞게 저도 많이 보답을 해야겠다, 노력을 해야겠다 느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한나 저는 그 주제를 보고 최근에 받은 위로도 너무 많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위로가 무엇일까를 좀 고민을 했을 때 기억에 남는 위로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저희 부모님이 어릴 때 막 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모두 체육대회나 졸업식 입학식 부모님이 온 기억이 없어요. 그게 되게 저한테는 좀 위축이 되고 좀 다른 사람들은 부모님이 와서 꽃다발도 주고 축하한다 그러기도 하고, 체육대회 때는 도시락을 싸와서 같이 나눠 먹고 하는 모습이 저한테는 되게 마음이 많이 아팠거든요. 왜 나는 부모가 있는데, 왜 친척네 옆에서 이렇게 껴가지고 밥을 먹어야 되지? 왜 이렇게 이방인이지? 이런 느낌을 되게 받았고, 그때 당시에는 그 감정에 대해서 깊이 들어볼 생각을 못했다가 대학교 올라와서 책을 읽고 ‘내 감정의 뿌리는 무엇일까?’ 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경험들이 생각이 나고 그걸 그냥 혼자만 생각한 게 아니라 엄마랑 만났거든요. 엄마랑 진지하게 그 얘기를 하면서 그때 엄마의 대답이 되게 크게 위로가 되었어요. 일단 그때 집안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그런 감정을 느낀 것에 대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 라고 말을 해준 거예요. 그 말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되게 그 순간 “아 나 그때 그 감정을 느낀 게 당연하구나” 하고 인정을 받은 것 같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나의 모든 것들이 수용된 느낌을 받아서 그 이후에 제가 살아갈 때 되게 큰 잔잔한 기반이 되었던 기억이 되어서 “아 나는 그 순간 위로를 받았구나.” 그냥 단순한 말 한마디고 그냥 감정에 대해서 받아들여짐에 불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나는 한 사람으로서 뭔가 내 자신이 그대로 있어도 되는 존재로서 느껴졌던 순간이어서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경험입니다. 이상입니다.
레오 저도 이제 인생에서 위로가 되었던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위로를 받으려면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어떤 힘듦이나 어려움이 있어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저는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뭔가 크게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아니면 힘든 상황에 처해 있거나 이런 것들이 없었는지 아니면 있었는데 제가 금방 까먹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크게 없었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이게 케이스대로 말씀은 못 드리지만 기억에 의존해서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었을 때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보면, 일단 저에게 크다고 지금 와서 크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격증 시험을 보거나 아니면 시험을 봤을 때 당연히 좋지 않은 점수를 맞을 수 있죠. 저는 왜냐하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합격점을 원하는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서 당연히 그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았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런 어려움이나 힘든 것을 조금 가볍게 여기게 되면 그런 문제점들이 가벼워지면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그거 떨어져도 저는 떨어지면 굉장히 한 3일간은 깊게 힘들어하고 그다음부터 완전 프리해지는 느낌인데, 그 3일간 정말 모든 사람한테 얘기를 해요. “나 떨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잘못된 거 아니냐, 여기저기 다 얘기를 하고 다니면 저는 이제 원래 그런 스타일인 걸 아니까 친구들이 이제 “그랬어? 왜? 점수 잘못된 거 아니야?” 이런 게 아니라 “니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다음에 시험 보면 되잖아. 다시 공부해.” 이런 식으로 좀 가볍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이런 방법들이 저는 힘듦과 어려움 속에서 제가 생각했을 때 무거운 문제를 타인이 가볍게 만들어주는 게 저는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진다, 그게 위로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루나랑 비슷하게 뭔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또는 해결될 실마리를 찾아주지 않으면 위로라기보다는 놀리는 건가? 또는 왜 나는 짜증나는 거지? 슬프지 않은데 왜 너가 슬프다고 강요하는 것 같지? 라는 그런 조금 그런 그런 게 있어서 저도 뭔가 해결이 됐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저도 인생에 큰 굴곡은 없었지만 그런 위로가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클로이 저는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제가 딱 취업, 제가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의 일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한 4년, 5년 정도 근무를 하고 한 8개월 정도 일을 쉬었던 적이 있었는데, 6개월 정도는 신나게 놀았거든요. 그런데 그쯤 되니까 이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심하기도 하고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취업을 그때부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이 세무사 사무실을 가고 싶지 않아서 일반 회사 같은 데를 지원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서울도 올라오고 제주도도 면접 보고 그랬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하다가 도배도 배우고 여러 가지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면접을 보고 제주도로 내려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는 사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되게 싱숭생숭하고 마음은 혼란스럽고 사실 세무사 사무실에 가면 취업이 될 거라는 걸 어떻게 보면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되게 마음은 불안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내려갈 때 부모님한테는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말은 안 하고 친구한테만 말했거든요. 그래서 친구한테 “나 너네 집에서 자도 되냐” 해가지고 그날 그냥 친구 집으로 바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저녁에 친구랑 밥 먹으면서 소소한 얘기도 하고, 아침에 친구 집에서 잠을 잤거든요. 자고 일어났는데 친구가 되게 따뜻한 밥이랑 진수성찬을 차려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되게 저는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뭔가 그때 당시에 제 상황만 설명하고 제 기분이 어땠는지, 감정이 어땠는지를 설명하진 않았는데 친구가 그걸 보고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마음이 든든하지 않으면 몸이라도 든든해야 된다. 따뜻하게 밥 먹고 가라”라고 하면서 밥을 차려줬던 그 순간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저는 블루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블루 저는 어제 이 ‘위로’라는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제가 한 굉장히 좀 오래되긴 했는데요. 아이를 낳기 전에 강아지를 생애 처음으로 길러본 적이 있거든요. 신혼 때. 그런데 지금은 없지만, 그 아이가 없는데 제가 한참 남편이랑 싸울 때, 신혼 때 막 싸워가지고 혼자 소파에 앉아가지고 되게 우울해하고 침울해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와가지고 그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저를 굉장히 위로해주는 거예요. 말도 못 하는 짐승도 이렇게 나를 위로할 수 있구나 라는 게 엄청 큰 느낌이 와가지고, 사람보다 어떨 땐 낫다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너무 옛날 얘기고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최근에는 사실 나이가 들면서 상처받는 것도 좀 덜하고 ‘이게 굳이 위로인가?’라고 디테일하게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제가 청년들 오기 전에 다녔던 사무실에서 나름대로 좀 힘든 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거를 문제의 근원이 뭔지 제가 굉장히 궁금해서 아는 친구한테 계속 제 상태에 대해 얘기를 막 했어요. 보통은 그냥 잡담처럼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그 얘기를 몇 번 듣더니, 한참 지나고 나서 “언니, 아무래도 생각을 한번 해봐야 될 것 같아. 이전에 얘기했던 뉘앙스랑 좀 다르다.” 우리가 불평불만을 얘기하기도 하고 뭔가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듣는 뉘앙스가 다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걸 그때까지 인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제 상태를.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얘기를 해줌으로 인해서 제 상태를 파악하고, 그러고 나서 “이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내가 마음이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퇴사를 하고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도 그 친구가 저도 미처 캐치하지 못한 아주 섬세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주면서 제가 무사히 이직할 수 있게 많이 위로와 공감, 그리고 용기까지 북돋아 주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모아나 얘기가 궁금합니다.
모아나 저는 어제 이 주제를 듣고 딱 생각났던 게 있는데요. 올해 상반기쯤에 체력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8월 초쯤에 저랑 제일 오래된 친구를 한 번 만났었어요. 걔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걔도 이제 서울에서 살아서 시간이 돼서 만났는데 사실 그날 별로 한 건 없었거든요. 그냥 점심에 만나서 밥 먹고, 할 게 없어서 영화나 보자 해서 영화를 봤어요. 뭐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영화도 보고, 나와서 저녁 먹었어요. 그리고 또 할 게 없어서 용산에서 만났는데 노들섬까지 걸어갔어요. 그 대교를. 그래서 낮부터 저녁까지 거의 이야기만 하고 놀았거든요. 이야기만 했는데 그날 거의 1만 5천 보를 걸었더라고요. 정말 많이 걸었는데 그 친구랑 저랑 초등학교 때 집이 가까워서 맨날 걔네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셔서 늦게 오시니까 학원 끝나고 각자 집에서 밥 먹고 “나 다이어트 해야 돼” 하면서 같이 공원 가서 산책하자고 해서 일주일에 한 8번은 만났던 친구예요.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걔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 중학교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되면서 각자 학원이나 이런 것들이 바빠져서 그게 좀 줄고, 고등학교 때는 다른 학교 가고, 대학 가고 하면서 점점 시간이 없어졌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그때 이상한 아저씨가 쫓아왔던 거 기억나냐?” 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는데 그 시간이 되게 위로가 되었던 것 같고, 그 친구가 그날 저녁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저랑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짧게 한 3~4줄 되는 글을 써줬는데 그게 너무 고마워서 캡처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떠오르면서 “주변에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윈터 저는 ‘위로가 된 경험’이라는 질문을 보고 솔직히 처음에는 생각이 잘 안 났거든요.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블루님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니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전에 회사에서는 사실 저는 그렇게 회사에 마음이 많이 있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원래 친하게 지내고 경력도 많은 분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를 하면서 그분의 어려운 거래처랑 제 어려운 거래처를 합쳐서 제가 담당하게 됐고, 남은 거래처는 새로운 분에게 드렸어요. 물론 당연히 힘든 시간이었긴 했는데 그냥 잘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청년주니어 공고가 떴고, 그분이 면접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반 장난으로 들었어요. 이 회사는 공고도 웃기고 너무 글이 없고, 귀엽고 특이하다 이랬거든요. 그런데 그 새로운 분도 자기가 와서 “적응이 너무 힘들다”, “이 회사 너 없으면 못 다니겠다” 이러면서 장난으로 말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민턴은 여기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청년들 면접 봐라”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 우리 엄마 아빠도 한 회사 오래 다니라고 하고, 나이도 있고 해서 그냥 이대로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여기 회사는 5년, 10년 있어봐야 변할 게 없다”, “이딴 데 있지 말고 면접 봐라” 이러면서 계속 설득했어요. 그런데 그때도 스케줄이 있어서 면접을 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주말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면접을 갔는데 엄청 길게 봤어요. 저는 진짜 특이한 회사라고 생각했거든요. 회계사무소에서 면접을 2시간이나 보다니. 그런데 면접을 본 다음 주 월요일에 그분이 “면접 잘 봤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잘은 모르겠다, 2차도 봐야 한대” 이랬더니 “그럼 보면 되지. 잘 갔으니까 2차 얘기도 한 거 아니냐”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결국 2차 면접도 보고, 최종 합격을 했는데 좀 미안했어요. 그분은 “아니다, 무조건 가라”며 퇴사 소문까지 챙겨주고 “가서 내 이름 언급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어요. 생각해보니 올해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이직을 깊게 생각하고 한 건 아니지만, 굉장히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제게 위로가 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이 저는 저번에 윈터가 할머니랑 엄청 친하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생각이 나는데,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저도 2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종일 통화를 했던 할머니인데 그다음 날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바로 상을, 그다음 날 오전부터 치러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상은 이틀밖에 못 치른 상황이었고, 다들 출근해야 되는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어요. 소식을 전한 사람도 있고, 못 전한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어요. 너무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소식을 저녁에 보내고 싶은 친구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 저의 가장 소중한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 친구들 중 한 명은 자영업을 해서 새벽까지 근무하는데 춘천에 사는 친구가 서울까지 첫 차를 타고 온 거예요. 그런 것도 너무 위로가 됐고, 제가 소식을 전하지 못했어도 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걸 알음알음 듣고, 일부러 찾아온 친구들도 있었어요. 어떤 친구는 퇴근하고 상복도 못 입고 그냥 왔고, 어떤 친구는 점심시간에 전 회사 동료분들이 다 같이 와주셨는데, 거기까지 오려면 2~30분을 차 타고 와야 했는데 업무시간이 좀 오버되더라도 위로차 와주신 그 자체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또 마지막에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줄 모르고 꽃다발을 사서 갔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결국 그걸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 꽃다발을 예쁘게 레지마르로 만들어준 친한 언니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 그때는 정말 슬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께서, 아빠가 가장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2~3개월간 퇴근하고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항상 전화해서 “다선아 여기 앞에 서 있어” 하면서 데리러 와주셨어요.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텐데 저를 그렇게 위로해주려고 해주셨던 모습들이, 그때 당시에는 제가 힘들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2~3년이 지났지만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위로였습니다. 저는 페리 하겠습니다.
페리 저도 이 주제를 보고 살면서 고마웠던 분들이 여러분 생각이 났었는데, 아까 모아나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어릴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사실 지금은 잘 모르는 친구이기도 한데, 초등학교 때 얘기인데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두 동밖에 없는 아파트였어요. 그래서 등교할 때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가 딱 한 명이었는데, 그 친구랑 늘 같이 다녔어요. 그런데 같은 반인데도 안 친해서 항상 비슷한 시간에 같이 가면서도 얘기 한 번 안 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되게 밝고 리더십도 있고 그런 친구였고, 저는 항상 외곽으로, 구석으로 다녔어요.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까 5학년 때 친한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6학년 때 새 반에 배정되면서 친한 친구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고, 마르고 왜소하고,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봇대 옆으로 구석으로만 다녔던 것 같아요. 그게 신경이 쓰였는지, 어느 날 하교하는데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이 나요. 그 친구가 저를 부르더니 “큰 길로 다녀. 숨어 다니지 말고 같이 다니자” 라고 말했어요. 그 뒤로는 같이 큰 길로 다니고, 종종 얘기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고 얼마 안 돼서 반년쯤 지나서 중학교 진학하면서 서로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그 뒤로는 그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때 그 친구가 해줬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친구 이름도 아직 기억나요.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 갑자기 ‘인생의 위로’라는 말에 그때 그 친구가 저한테 해줬던 말이 떠올라서 오늘 얘기를 해봤습니다.
마리아 조금 진부할 수 있는데요. 저는 제 인생에서 위로가 되었던 경험은 현재 진행 중인, 저희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해요. 윈터가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살았고, 스무 살 되자마자 자취하면서 15년째 혼자 살고 있어요.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동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해서 반대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구조하게 되면서 키우게 되었는데,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2시간에 한 번씩 밥 줘야 해서 잠도 못 자고, 출근할 때도 데리고 가야 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이 존재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더라고요. 퇴근하고 와서 얘가 없다고 생각하면 눈물 날 것 같아요. 존재 자체가 저에게 위로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고, 앞으로 10년간 계속 저를 위로해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야 저도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해서 어제 이 주제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저는 누구한테 위로받거나 슬픔을 나누거나 이런 경험이 잘 없고 그렇게 하려고도 안 하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냐면, 제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에 보면 ‘대운이 들어오는 징조’라고 한번 쳐보시면, 10년에 한 번 대운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 번 인생의 바닥을 친다 그런 말이 항상 있더라고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그냥 그런 대운 징조 이런 거를 치면서 “대운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 번 파도가 밀려오기 전처럼 한번 휩쓸린다” 그런 걸 보면서 혼자 다스렸고, 남들이 좀 힘들어 보인다고 “같이 술 마시러 가자” 이러면 “나는 기분 안 좋은 걸 남들한테 뻗뜨릴까 봐 나 오늘 기분 안 좋다” 이러면서 집에서 혼자 이걸 해놓고, 이제 기분 좋을 때 사람들 만나고 이런 편이었는데 오늘 주니어에서 사람들 생각들을 공유하다 보니까 저한테도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참 많았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뭐 평탄하게 산 것도 아니고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적도 있었고, 강아지도 중간에 한번 왔다 간 적도 있고,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 크게 났을 때도 옆에 있었던 친구도 있고 그런 생각이 나면서 “너무 인생을 삭막하게 살지 않았나”, 그러면서 “나도 다른 사람한테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것들도 다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 하면서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노아 하신 거 궁금합니다.
노아 저도 이번 주제를 듣고 정말 많이 생각을 했는데요. 그런데 저도 생각보다 개인적으로 너무 단순하고 낙천적이어서 그냥 맛있는 거 먹고 고양이 한 번 만지고 친구들이랑 만나고 아니면 잠을 푹 자고 하면 스트레스를 금방 잊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보다 타인에게 위로를 받는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거를 오히려 새삼 느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잘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다만 저도 다야 같은 그런 모토가 있어요. 이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는데 엄청 어렸을 때 본 건데 그냥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 하나로 “이것도 그냥 하다 보면 지나가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근본적으로 제 스트레스가 해결되려면 해야 되는 일이 끝나야지 해결이 되는 것 같거든요. 회사 일이든 작성해야 되는 서류든 PPT든 뭐든. 그래서 해결이 되고 나면은 막상 그게 그렇게 힘들었거나 스트레스였다 이런 생각이나 감정도 사실은 그냥 무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생각나는 거는 저는 아직 가족하고 살고 있고, 아직 저희 고양이도 건강하게 잘 살아주고 있어서, 제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돌아가신 적도 없어서 그런 큰 위로의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나중에 저한테 큰 고난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이게 바로 위로라는 느낌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면 그때 가서 공유를 해보겠습니다. 이상입니다.